• 멍먼정보

    대우가 후커우 석조에서 황용을 제압한 뒤 다른 하천을 개발하러 급급히 떠나버렸습니다. 몇 년이 지나간 후 그는 다시 황하에 와서 하천의 상황을 감찰했습니다. 어느 날, 대우가 황하 협곡을 따라 걸어가던 중 어느 노파가 강변에 앉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서러워하고 있자 대우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얼른 달려가 노파를 부축한 뒤 따듯하게:”늙은 어머니,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말씀하게요, 제가 해결해드릴게요.”노파는 대우가 선량하고 나쁜 사람 같지 않자 눈물을 흘리며:”아들아, 이 강에 살고 있는 황용이 우임금에 의해 제압된 후 후커우 석조 아래에 감금을 당해 다시는 기어 나오지 못하긴 하지만 매년 4월 18일 생일만 되면 기어 나와서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먹어치움으로써 생일을 축하하곤 한단다. 나의 어린 딸이 12살 때 이미 황용에게 먹혔고 올해 나의 손자가 12살인데 난 너무 무섭구나, 또 황용이 낚아채갈 가봐.”말하다 노파는 또 눈물을 훔쳤습니다. 대우는 노파를 위로하면서 강변에 서서 큰 소리로 윽박질렀습니다:”황용, 너 사람을 해치는 요괴 같으니, 어서 빨리 기어 나오지 못할까, 오늘 내 너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야.”그러자 황용은 전전긍긍하며 대우 앞에 나서서 맹세하기를:”소인 다시는 사람을 해 치치 않겠나이다, 우임금께서 한 번만 용서해주시면 앞으로 좋은 일도 많이 하여 죄를 씻겠나이다.”황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강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대우는 앞문과 뒷문을 봉하 고도 시름이 놓이지 않아 황용의 중간문에 용을 감금하는 보석을 두어 다시는 나와서 사람을 해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 봄에 있은 일인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멍먼정보라 불렀습니다.

    서술인:낙영은

    정리인:손창매

  • 멍먼산의 용왕묘

    옛적에 멍먼산 앞에 용왕묘가 있었습니다. 황하 양안의 백성들은 매년 이곳에서 두 차례의 모임을 가지는데 돼지와 양을 잡고 3일 동안 노래를 부르며 용왕에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경묘회”라고 부릅니다. 이래야만 용왕이 깨어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진다고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용왕이 엄청난 풍랑을 일으켜 모래를 불러일으키고 홍수가 천하에 퍼지며 양안의 농작물들이 다 물에 잠겨 백성들이 마음 놓고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시간이 지난 후 “”경묘회”는 멍먼산 일대 백성들의 풍속 습관이 되었습니다. 용왕은 술과 여자를 좋아하는 어리석은 왕인데 용궁에 궁녀 천백 명을 거느리더라도 민간의 여자를 탐했습니다.”경묘회”때 민간인 여자가 사당에 들어가기만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데 알고 보니 용왕이 용궁으로 빼돌려 자신의 사욕을 채운 거였습니다. 그리하여 매년 묘 회기 간에는 아무리 흥성하더라도 여자들은 절대 가지 않습니다.

    훗날 대우가 홍수를 처리하러 이곳에 들렀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에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내어 파렴치하기 그지없는 용왕을 혼내주었습니다. 매년”경묘회”때 그는 용감한 무사를 파견하여 멍먼산에 올라가 용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상하리만치도 용왕은 대우가 무서워서 더는 헛짓거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로써”경묘회”가 열린 후에도 여자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흐른 뒤 수위가 높아지고 멍먼도 높아져 아무리 큰 홍수가 지더라도 멍먼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곳에 여행을 간다면 아직도 멍먼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서술인:낙영은

    정리인:손창매

  • 멍먼야월

    “멍먼”은 황하 중심에 위치하였고 멀리서 보면 쪽배 같고 가까이서 보면 산 같으며 남쪽으로 용문과 마주하고 북쪽에는 후커우와 인접해 있으며 대우가 홍수를 다스릴 때 멍먼에 놓고 간 진용 보석입니다. 보석이기에”야월”을 야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오래된 시기에 하늘에는 10개의 태양이 있었는데 매일 교대로 하늘을 지키곤 했습니다. 어느 날, 10개의 태양이 함께 하늘에 떠있자 하늘 아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10개의 태양이 마치 거대한 불덩이 마냥 불타오르는데 곧 화재가 날 거 같아 사람들은 모두 산굴로 피신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옥황상제가 이 사실을 알고 후예를 파견해 지상의 사람들을 구원하였습니다. 후예는 인간세상에 온 후 화살로 9개의 태양을 쏴버렸습니다. 이 아홉 개의 태양은 바닷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후회막급하여 나설 자리가 없어진데 대해 속상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멍먼에 보석이 있는데 그 보석을 통해 다시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신기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기쁨에 잠겨 “이젠 나설 자리가 생기겠어.”형제들은 의논 끝에 일제히 멍먼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아홉 개의 태양은 멍먼에 당도한 뒤 물속에서 영롱히 반짝이는 보석을 보았는데 수면 위로 떠오르며 눈이 부시게 반짝거렸습니다. 수위가 높아지면 멍먼도 높아지고 수위가 낮아지면 멍먼도 낮아지는 게 참 재미났습니다. 특히 저녁이면 멍먼은 더욱 기이해졌는데 하늘의 신선들이 모두 모여 담소를 나누고 달에 살고 있는 상아도 어여쁘게 단장하고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멍먼을 떠나녔는데 흥성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홉 형제들은 과거의 보잘것없던 달이 감히 자기들과 비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리하여 아홉 형제들은 달과 겨뤄보기로 마음먹고 보석 주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녔습니다. 그리하여 매일 저녁이 되면 달 소녀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아홉 형제들도 생기발랄하게 뛰어다녀 용문과 달을 넘나들며 반짝였습니다.

    서술인:낙영은

    정리인:손창매

  • 멍먼산

    후커우 폭포 하류에서 오키로 떨어진 곳,”십리 용조”의 하단, 황하 하곡의 강바닥에 두 개의 방추형 모양을 띤 거대한 돌멩이가 우뚝 솟아 두 개의 하심섬을 형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고대에 “구하의등”이라 불리는 멍먼산입니다.전하는바에 의하면 이 두 개의 작은 섬은 원래 하나의 산이였는데 수로가 막히면서 홍수가 지게 되었고 대우가 홍수를 처리할 때 산을 두 토막 내어 물이 흐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 두 개의 섬은 멀리서 보면 쪽배와 같고 가까이서 보면 산과 같고 위에서 보면 문과도 같습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고대에 멍 가네 형제의 후대가 강물에 떠내려가다 이곳에서 구원을 받았다 하여 이 두 섬을 멍먼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대멍문섬은 길이 300미터, 넓이 50미터, 수면으로부터 10 미터 됩니다. 남쪽 절벽에는 청, 아정 초년에 금명군수 서행영이 “와진광류”라는 네 글자를 세겨넣었는데 길이 2.5미터, 넓이 1미터로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대해 절묘히 묘사했습니다.소멍문섬은 대멍문섬의 상류 10 미터 되는 곳에 있는데 길이는 5-60미터가량 되며 이 두 하심섬은 모두 수평방향의 회녹색 사암으로 구성되었는데 암석이 단단하여 바람을 막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멍먼은 사납게 흘러오는 이류에 맞서 당당하게 솟아있으며 아무리 큰 파도가 불어닥쳐도 절대 무너지는 일이 없습니다.멍먼”남접용문천고기,북견호구일사천”이라는 시구처럼 웅자와 용문 그리고 후커우는 황하의 3대 경관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경치로 유명한 바 “사시무미호구,양안파도한맹문”이라는 시구도 이를 노래했습니다.   《지리지식》에 의거하면 멍먼은 원래 황하 강바닥의 균열된 부분이였다고 합니다, 후커우 폭포가 당시 이곳에서 생겨났습니다. 장기간 지각이 상승하고 하천 절식 작용이 강해져 침식되고 균열이 위로 올라가면서 폭포는 멍먼에 의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느며 폭포 아래에 깊은 못이 오늘날”십리 용조”가 되었는 바 멍먼산은 폭포 심담이 위로 떠밀려와 남겨진 잔여 암석 고체라고 합니다.

    황하의 멍먼은 경치가 수려할 뿐만 아니라”멍먼의밤”도 아름다운 바 황하의 발육 역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과학적 가치가 있습니다.